왜 오셨을까?(3)(본문 : 눅 7:11-23)
<들어가며>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는 좀 더 근본적인 죄의 문제로 기인합니다. 그렇게 죄로 인한 죽음 때문에 고통 가운데 두려워하고 슬퍼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인 성에서 한 과부의 아들의 장례 행렬을 만나십니다. 유대 사회에서 과부는 사회적으로 최약자이자 최빈곤층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과부에게 유일한 희망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게 되었고, 성의 사람들이 함께 슬퍼하며 장례 행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라면 부정한 장례 행렬을 피해야 하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잃어 소망이 사라진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다가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의 힘든 문제들을 외면하거나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2.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며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슬픔에 잠겨 우느라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예수님이 와 계십니다. 이제는 우는 것을 그치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청년을 살리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의 능력이 흘러 들어간 것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은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벽이지만, 예수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을 주심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담대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 쫓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보며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에 의심이 들었습니다. 메시야가 오면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기에 회개하라고 전파했는데, 예수님은 요한이 기대한 메시야와는 다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기록 된 또 다른 메시야의 사역으로 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당장의 심판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어그러진 세상에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야 합니다.
맺는 말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 앞에 설 것을 기대하며 부르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그 나라를 전해야 합니다. 전도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주께서 공급해 주십니다. 생명과 죽음을 주고나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함께 걸어가며 전도의 상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