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본문 : 창 37:12~24)
<들어가며>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자들입니다. 그저 단순히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 고백하는 것으로 인해 구별되는 것이 아닌, 삶의 모습에서도 구별됨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셉이 형들을 도우러 갔다가 죽임을 당할 뻔하고, 결국 형들의 손에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나타난 요셉의 형들과 요셉 사이에 삶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요셉의 형들과 요셉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습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 대해 질투와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이듯 그것을 넘어 요셉을 죽이려 했던 이유에 대해 성경은 요셉의 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요셉으로부터 꿈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이 보통 꿈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 꿈을 보여주신 것은 야곱의 아들들의 삶을 간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가 보내신 자를 죽이려 했습니다. 요셉은 그 꿈 때문에 어떤 고난 속에서도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갔던 반면, 형들은 그 꿈 때문에 요셉을 죽이려 작정했던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간섭과 말씀에 의한 삶이 아닌 내 마음과 내 생각에 의한 삶을 살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렇기 ��문에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부딪치면 말씀을 포기하고 내 생각대로 살려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반면, 요셉은 그런 상황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갑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셉의 모습은 단순히 예수님의 예표로서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본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셉은 꿈을 받은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 꿈 때문에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꿈 때문에 죽음으로 인도하는 구덩이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요셉, 그런 요셉을 질투와 분노로 죽이려 했던 요셉의 형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단순히 무엇을 붙잡아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다면, 내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인정하고 있다면 그 하나님이 내 삶을 인도하실 것을 믿고, 오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실 것을 믿고 삶의 여유를 가지고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요셉의 삶에 그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요셉처럼 무슨 일을 만날지라도 담담하게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